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여사친들의 추천이 있어, 책을 멀리하던 내가 서점에 방문하게 됐다.

흔한 소설일 것인데 여사친들은 나에게 왜 82년생 김지영을 추천해줬을까?

처음엔 우리 시대 보편적인 여성의 스토리이고, 여성에 대한 불합리한 사회적 편견을 이야기하는 책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랬다. 꿈 많고 능력있고 대학도 나온 배울만큼 배운 82년생 김지영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경단녀(경력단절녀)가 되며 겪는 우울증과 상실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차별과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겪어본 책과 영화 중에 주인공을 이렇게까지 고통을 주고 억압하는 작품은 처음이다.

여성이 차별받는 내용의 작품 중에 이렇게 주인공에게 일말의 희망도 주지 않고, 희망을 무너뜨리며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을 차별과 폭력의 대상으로 내모는 것은 처음 겪어본다.

조남주 저자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여성들이 사회에서 당한 모든 종류의 억압과 차별을 200페이지가 안 되는 책 안에 가득 담아냈다. 남아선호사상부터 직장 내 성추행, 몰ㄹㅐ카메라 촬영까지 사회적인 문제까지도 폭 넓게 담아냈다.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문제가 되고 있는 여성 차별과 성희롱에 대한 시각, 남성우월주의, 가정주부의 노동가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등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꺼내 보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ㅍㅔ미니즘의 논쟁만큼 남성과 여성이 이 작품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작품 안에서 김지영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의 성별은 모두 남성이다. 감정을 이입해서 이 작품에 집중하다 보면, 남자에 대한 편견과 증오, 남혐 현상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작품 속의 남성들은 무신경하고 권위적이며,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한, 자신들의 영역에 여성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벽을 치고 있다.

특히 놀라운 점은, 김지영의 학교생활에서 일어나는 차별이다. 밥을 빨리 먹이는 담임선생 때문에 항상 여학생들은 뒷번호라 체하는 고통으로 밥을 먹게 된다. 이는 남자는 앞번호, 여자는 뒷번호라는 차별에서 비롯된다.

김지영을 괴롭히는 남학생이 너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라며 친하게 지내라는 담임선생의 말도 학창시절 여자들이 겪을 수 있는 고통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어떤 작품이라도 반전이라는게 있고 억압을 벗어나면 자유가, 범인을 잡으면 평화로운 희망이 있겠지만, 82년생 김지영은 더 나아질 희망도 행복한 미래를 그려나갈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아냈지만, 그 시절을 버티고 살아온 사람들마저 정말 이렇게 지옥 같은 나날들이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이야기의 강도가 굉장히 강하고 여성중심적이다.

이 책을 불편하게 보는 시선도 있지만, 나는 조남주 작가가 왜 이런 작품을 썼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겪어온 고통을 담아내고자 하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고, 방향성에 있어서는 충실하게 임무를 완수한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반면, 82년생 김지영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이유는 이 작품이 지닌 공감능력 때문이다.

형제가 둘이거나 하나였던 1980년대 초반 출생의 내 여사친 혹은 아는 여동생들은 조부모와 부모 밑에서 충분히 사랑받고 컸고, 남동생 혹은 오빠와 차별받기 보다는 더 사랑받고 컸다는 증언들이 많다.

학창시절에도 남자 형제들하고 차별을 당했다는 하소연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선생님이 꿈이었지만, 대학교 가는게 꿈이었지만, 남자형제들의 학비지원을 위해 꿈을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들었다는 김지영 엄마의 사연이 더 이해가 되고 마음이 아팠다.

우리 부모 세대에서는 특히 우리 엄마들의 시절에는 여자형제들이 벌어서 남동생 뒷바라지 하고, 학교 보내고 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여성우월주의적 관점의 ㅍㅔ미니즘적 성향의 소설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성과 나이세대를 떠나서 차별받고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인식전환의 시발점이 되어줄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왜 이 작품을 시작으로 ㅍㅔ미니즘 열풍이 불었는지, ㅍㅔ미니즘 열풍이 왜 평등과 공존이 아닌 파괴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지 이 작품을 읽고서 납득이 갔다.


하지만, 공감능력이 특정 대상에게 치우쳐 있고 이를 위해 반대편에 위치한 대상을 완벽한 악역으로, 그리고 그들이 함께 살고 있는 공간을 지옥과 같은 희망 한 점 없는 곳으로 설정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나친 공감이 남혐 여혐을 만들고 사회를 절단시키는 칼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 Recent posts